만주군 출신 박정희, 5.16으로 권력 장악

해방 직후 일본 해병대 소좌 정일권은 육군참모총장으로,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은 육군참모총장에다 최연소 육군 대장으로, 만주군 군의관 원용덕은 초대 헌병사령관, 관동군 헌병대 출신 김창룡은 육군특무대장으로 화려하게 귀국했다. 이들의 승승장구는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충실히 한 결과였다.

친일의 옷을 벗고 분단국의 반공 전사로 변신한 이들은 다시 한번 5.16이라는 호기를 만들어 자양분을 공수받게 된다. 만주군 출신의 육군 소장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데, 당시 쿠데타 중심세력들이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이었고, 여기에 만주 건국대학과 대동학원 출신들이 동참했다.

만주 인맥 정일권, 최규하, 백선엽, 박임항 등

통탄할 일이었다. 봉천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 정일권, 만주 대동학원 출신 최규하, 봉천군관학교와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 박임항, 만주군관학교 출신 김윤근 등 이른바 일제의 만주 인맥들은 이후 역대 정권을 거쳐 군부는 물론 정계와 행정부의 최고 요직까지 장악했다.

그러나 이들 반역자의 이력 중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된 경우는 아예 없었다. 이렇듯 청산되지 못한 친일 역사는 대한민국 현대사 물줄기를 흐린 진흙탕 물로 휘젓고 말았다. 5.16쿠데타를 성공한 이후 박정희는 서둘러서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협약을 위해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과 은밀한 협의를 위해서였다.

1965622일 한일 협정 조인되다

이듬해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 간에 3억 불 무상원조와 3억 불 차관제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른바 -오히라 메모라 불렸던 밀약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한일국교 수립을 반대하는 시위로 들끓었다. 이런데도 1965622일 한일 협정이 조인되고 말았다.

일제 36년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단 3억 달러와 맞바꾼 대통령 박정희와 국무총리 정일권은 일제 치하의 만주군 출신이었다. 전후 배상금이 아닌 청구권이라는 3억 달러의 명분은 과거사에 대한 책임과는 관계가 멀었다. 일본 측에서는 한 식구가 분가하여 따로 살림을 차리는 데 대한 독립축의금 수준이었다.

만주 인맥의 중심,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일본의 대표적인 만주 인맥 중 한 사람인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로부터 1등 수교훈장을 받았다.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굴욕적인 한일협약은 바로 일제 만주 인맥들의 합작품으로 전개됐다.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표방했던 박정희는 이후에도 기시 노부스케에게 국정 자문을 구했으니 이런 개꼴은 없다.

기시 노부스케는 그의 저서 기시 노부스케 회고록(岸信介回顧錄)’에서 5.16쿠데타 직후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록했다. “우리는 메이지유신을 이끄신 애국지사와 마음이 같습니다. 그들을 무척 존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새 한국 건설을 위해 좋은 의견을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1940년대 만주가 1970년대 한국에 등장

집권 후 국가 주도의 기간산업과 중화학공업 육성 등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박정희의 개발방식은 바로 기시를 중심으로 한 일제 관료들이 만주국 건설과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재건에 사용했던 방식 그대로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통제 경제국가다. 이는 관료가 전권을 쥐었던 만주국 건설의 본질이었다.

유신독재 상징처럼 여겨졌던 주민동원 체제 역시 일제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유산이었다. 1940년대의 만주국이 1970년대의 대한민국에 그대로 접목이 되었던 것이다. 만주국 지배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억압하기 위해 일제가 했던 그대로 박정희는 한반도의 남쪽에 그들만의 통제사회를 부활시킨 것이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이 부끄러울 뿐이다

일본제국주의의 또 다른 피해국이었던 중국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절차가 진행되었다. 종전 직후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파들, 곧 한간(漢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단행되었다. 친일파 처단에는 공산당과 국민당이 따로 없었다. 한간 재판은 3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중국인의 민족사 바로 세우기, 그 자체였다.

한간 재판은 국민당 점령 지역에서의 처리 건수만 45천이나 되었고, 14천여 명의 형 집행이 확정됐으며, 359명에게는 사형을 집행했다.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중국 사회에서 영원히 배척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제 만주국 출신들과 그 후손까지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다. 너무 부끄러울 뿐이다.

 
최창수 논설위원(서울총괄취재본부장)
최창수 논설위원(서울총괄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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